전두환 그는 천사의 고지를 들었을까? [넷플릭스 지옥과 전두환의 죽음]
먼저 엄숙한 죽음 앞에 우선순위를 놓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포스팅은 갑작스럽게, 의도치 않게 작성하게 되었음을 먼저 밝힙니다.
11월 23일 저녁에 수만 가지 짧은 생각들이 내게 들어옵니다. "전두환, 지옥, 자존심, 5.18, 전두환의 주변인, 떠난이와 남겨진 자, " 이런 주제어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문득문득 내 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바로 자리에 앉아 제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이런 민감한 사회이슈에 제 생각을 남긴다는 것조차 두렵기도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던 그와 관련된 짧은 코멘트라도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저를 사로잡더군요.
이후부터 글이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말이 짧아진다는 것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2021년 11월 23일 오전 8시 40분경 전두환이 사망했다...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차마 붙일 수 없는 점을 이해하시라.
우리의 현대사에서 그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굴곡진 역사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그 사람이 마침내 숨졌다...
먼저 전두환과 관련 있던 이들이 떠오른다.
청문회에서 전두환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지고 호기롭게 외치던 노무현도 죽었다.
5.18을 광주사태, 빨갱이들이 저지른 폭동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수괴로 전두환이 옭아매려 했던 김대중도 죽었다.
헬기에서 조준사격을 가했음을 분노하면서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강하게 성토했던 조비오 신부도 죽었다.
그리고 전두환은 그들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 동안 하늘이 내린 천수(?)를 다 누렸다.
삶은 살았던 날수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빛과 같은 삶이 더 값진 법이다.
전두환은 어땠을까? 80년 광주 민주화 이후 40여 년 삶을 더 살았건만, 그것이 그에게 행복이었을까?
오직 신만 아실 것이다. 잔혹함으로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켰던 그가 왜 그토록 오랜 세월 장수하며 천수를 누렸는지를...
나의 유년시절 1980년 광주에서 외신 특파원들이 남겼던 사진전을 보게 된 적이 있었다. 서울의 작은 예배당이었다. 그때 받았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까지도 그 사진 자체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내 감정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여쁜 유방이 잘려나간 채 숨져있던 한 젊은 여성의 사진,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길 총격을 받고 숨져 있던, 피로 얼룩진 교복 차림의 천진난만한 학생들의 사진, 체육관에 급히 마련된 태극기로 덮인 수많은 시신들 앞에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비통함에 절규하던 우리의 어머니들 사진... 이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고 내 뇌리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전두환이 없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변했을지 우리는 아는가?
그가 아니었다면 더 정의로워졌을까? 더 깨끗해졌을까? 더 살만해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전두환과 같은 폭력성, 야만성, 무자비함이 우리에게도 늘 도사린다. 우리는 그를 천벌 받아 마땅한 놈, 지옥에 떨어져도 당연한 놈이라고 실컷 욕하지만,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폭력성이 없는가? 우리도 불구경이 재미있고, 싸움구경이 재미있다.
기분 좋게 출근길에 나섰는데 내 뒤차가 무섭게 달려들며 내 주행을 방해하면 나도 모르게 피가 거꾸로 솟구치듯, 내 속에서는 분노가 일순간 몰려든다.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내 속에서 무서운 생각들을 떠올리며 상대방을 저주하고 싶은 마음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지난 11월 19일 넷플릭스에 출시된 [지옥]을 보았는가? 나는 주말에 끝까지 정주행 하였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할아버지가 했던 대사는 엄청난 유행어와 패러디를 남겼다. "이러지 말아, 나 무서워,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
지옥을 시청했다면 생각나는 대사가 무엇이 있었는가? "박정자. 너는 5일 후 15시에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
이것밖에 없다. 이게 가장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누군가 이 대사를 말한다면 모두들 [지옥]을 떠올릴 만큼, 이 대사는 전 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지옥 넷플릭스 공개 이후 불과 4일 만에 전두환이 사망했다.
공교롭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천사가 고지하던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고, 누구나 그 고지를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친숙해졌는데, 이런 와중에 전두환이 사망한 것이다.
그러면 누구라도 "전두환. 너는 10분 후에 네 집 화장실에서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
이런 패러디 만들어볼 생각을 안 해 보았을까? 나도 떠올리는 이 패러디를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전두환의 죽음 앞에서 유족들은 슬피 운다.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할아버지로서 따스했고 인자했고 사랑 가득한 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오버랩되는 또 한 편의 사람들이 있다. 전두환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오열한다. 그들은 5.18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다. 41년 전 전두환이 저질렀던 만행과 폭력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 딸, 엄마, 아빠, 손자를 잃었던, 남겨진 유족들은 그 수많은 날동안 눈물로 세월을 곱씹으며 버텨왔는데, 전두환은 죽는 순간까지 참회하지 않았다. 유족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존심은 참 무섭다. 그 하나가 한 사람을 버티게도 할 수도,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전두환은 사죄 대신 자존심을 택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순간에 그의 존재 자체가 부정될 것임을 그는 두려워한 게 아닐까? 자존심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굳은 신념을 지키고 산화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전두환은 과연 자존심을 지킨 것일까? 그게 그의 용기였을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념이었을까? 자신이 정의롭다고 왜곡된 진실을 스스로 주입했던 건 아닐까?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는 걸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을까?
생각해 본다. 참된 부끄러움은 무엇일까? 진정한 용기는 무엇일까?
전두환이 죽기 전 힘겨운 걸음을 내딛고 광주에 내려가 유족들 앞에서 한마디라도 진심 어린 사죄를 했더라면 그것은 위대한 용기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나를 높이고, 나를 드러내며, 잘난 척 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내 가장 약한 부분, 치부를 드러내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전두환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면 그는 홀가분하게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죽기 전 천사의 고지를 들었을까? 죽음의 고지였을까? 아니면 "너는 지옥에 간다." 이 말이었을까?
넷플릭스 [지옥]에서 민혜진(김현주 분)의 엄마는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 이상한 거 나도 봤다. 나한테 암 걸렸다고 말한 의사가 내게는 천사의 고지였다."라고...
생각해보면 우리들 모두가 천사의 고지를 들은 채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나면서부터 천사의 고지를 들었다.
"아무개, 너는 며칠 후, 몇 달 후, 몇 년 후, 몇십 년 후 죽는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 수긍하고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세상에 출생한 순간,
사망선고를 들은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살아간다. 인정하기 싫을 뿐...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옥]에 나오는 천사의 고지처럼 마지막 한마디가 덧붙여진다면 그건 누구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
극 중 지옥에 간 사람들, 그들은 지옥에서 어떤 것들을 경험하게 되었을까? [지옥] 시즌2에서 부활한 박정자가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성경을 언급하자면, 저들이 진노의 포도즙 틀에 들어가 짙이겨진 후 지옥에 던져지니 그곳에 들어간 자들마다 불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막 9:49)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지를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넷플릭스 [지옥]에서는 천사의 고지를 들은 사람들은 동일하게 죽어 마땅한 죄목이 있었다.
천사의 고지를 들은 이들이 가장 두려웠던 건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죽는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었을까?
그 두 마디 모두 두렵고 떨리는 말들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죄인이라고 매도당하고, 자신으로 남겨진 이들이 평생 죄인의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 가장 두렵지 않았을까? 나는 그리 헤아려본다.
천사가 나타나 고지하고, 그 고지했던 날에 정확한 시간에 나타난 지옥의 사신들 3명이 죄인을 무자비하게 때려죽이고, 그의 영혼까지 거두어가는 그 무서운 광경 속에서, 그 자리의 목격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죽음을 당한 사람을 향해, 죄인이었기에 심판,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그를 정죄하며 또 한 번의 인격살인을 가한다.
한 사람이 숨을 거두는 그 엄숙한 자리에서, 그를 향한 애도나 작별의 정을 나누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무참히 죽음을 맞이한 그가 죄인인가? 그 자리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도 방금 죽은 사람을 비난하고 조롱하던 그들이 죄인인가?
우리도 쉽게 "저런 죽어 마땅한 놈, 저런 천벌 받을 놈, 저런 썩을 놈..." 남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타인에게로부터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을지는 1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말이다.
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놈은 사실 없다. 우리에게도 죄의 경중만 있을 뿐,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마음으로 짓느냐? 행동으로 보였느냐? 의 차이이며, 발각된 죄냐? 숨겨진 죄냐? 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도 전두환의 폭력성, 야만성이 숨겨져 있음을 인정해 보는 건 어떨까?
나도 모르게 내 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죄의 생각들이 내게는 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지옥의 명대사 중 새 진리회 정진수 의장(유아인 분)의 말이 생각난다.
"공포가 아니면 뭐가 인간을 참회하게 할까요?"
많은 이들 중에서 죄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신앙의 가르침으로 인해 자신을 죄짓지 않게 만들고, 끝없이 참회하도록 스스로를 가혹하게 연단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그들의 선행의 근거는 공포심이 맞다...
이 세상의 규범이나, 법칙, 내가 배워왔던 윤리가 나를 지탱해 줄 뿐, 내가 죄를 지어도 그 죄의 대가나 처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도 언제 죄를 지을지 나도 내 속을 모를 때가 있다. 문득 그런 모습이 보일 땐 나 자신이 어색하고 낯설기도 하다.
조성모의 가시나무 가사를 알고 있는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내가 정말 많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들이 문득문득 나를 이끌어갈 때 우리는 참으로 당황스럽다.
전두환은 죽었다. 그는 천사의 고지를 들었을까?
젊을 때 날던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어마 무시한 권력의 최정상에 있던 그였지만, 우리는 보지 않았던가?
노쇠하고 총기를 잃어버린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린 전두환의 노년을 말이다.
오늘 전두환의 죽음을 받아 든 우리에게 수만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불쌍하고 안타깝고 비통하고 화가 치밀고, 분노의 마음이 일지만 한 사람이 숨진 것에 대한 짧은 작별의 인사 건네는 것으로 우리가 인간이었음을 나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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